본문 바로가기
정치,시사,연예

아베신조 총격 사망, 출생, 재임기간, 집안 배경과 성장기

by 치킨이좋아 2022. 7. 9.
반응형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8일 오전 11시 30분쯤 나라현 지역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연설을 하던 중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고 NHK가 보도했습니다.

아베 신조 사진


출생

1954년 9월 21일
도쿄도 신주쿠구

사망

2022년 7월 8일 (향년 67세)
나라현 가시하라시 나라현립의과대학부속병원

재임기간

제90대 내각총리대신
2006년 9월 26일 ~ 2007년 9월 26일
제96대 내각총리대신
2012년 12월 26일 ~ 2014년 12월 23일
제97대 내각총리대신
2014년 12월 24일 ~ 2017년 10월 31일
제98대 내각총리대신
2017년 11월 1일 ~ 2020년 9월 16일

집안 배경과 성장기

아베 신조는 1954년, 아베 신타로와 기시 요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집안은 무척 화려한 엘리트 정치인 집안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자민당 체제를 확립한 쇼와의 요괴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는 기시의 친동생이자 7년이 넘는 장기집권에 비핵 3원칙으로 유명한 사토 에이사쿠입니다.

사실 외가쪽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친할아버지인 아베 간도 중의원을 지냈고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장관을 지내다가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됐습니다.

다만 친가와 외가의 행적이 정반대입니다. 아베의 진외고조부는 일본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밑에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오오시마 요시마사로, 이 자는 청일전쟁 이전 고종과 당시 왕세자 이척이 있던 경복궁을 불법으로 기습하여 점거한 전적이 있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입니다. 아베의 외조부는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기시 노부스케로 1930~1940년대 만주국에서 주요 요직을 지내며 일본 군국주의를 최전선에서 주도하던 A급 전범이며, 전후 총리대신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친할아버지인 아베 간은 야마구치현의 대지주 출신으로, 오슈(奥州, 지금의 이와테현)에 근거를 둔 아베노 무네토의 후예라고 하는데, 외조부와는 상반되는 반전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일제의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42년에 대놓고 전쟁 반대를 외치며 도조 히데키를 정면 비판했으며, 대정익찬회의 공천도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될 정도로 반골정신이 강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1946년 총선을 준비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해 전후 일본 정치 질서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베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도 본인이 아베 간의 아들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으며 '기시 노부스케의 데릴사위'라고 부르면 매우 싫어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친한파 정치인이었습니다.

아베 신조는 친가 쪽보다는 외가 쪽의 정치적 사상에 어렸을 적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외할아버지에 대한 애정 등 감정적인 요소가 아베 신조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베는 학생 시절부터 자신을 아베 간보다는 '기시 노부스케의 손주'라고 칭하고 다녔으며,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으로 꼽았습니다.(이토 히로부미에게 '조슈 번 번영을 위한 일본 황권 내란 수모자'라고 비난주며, 조선계 러시아인 최재형과의 히로부미 암살 공모를 꾸몄다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말한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의 언행을 두둔하기도 했습니다.

아베 신조는 소학교에 입학하면서 계열학교까지 입시를 치르지 않고 자동으로 입학하는 체계(일관교육)를 가진 사립학교인 세이케이(成蹊) 소학교에 입학, 세이케이 중학교, 세이케이 고등학교를 거쳐서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77년에 미국에 건너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 정치학과를 다녔지만 1979년에 중퇴했습니다.외조부와 작은 외조부, 거기에 모자라 친조부와 부친까지 죄다 도쿄대 법대 출신이었던지라 아베 자신도 집안 안팎에서 도쿄대 진학을 압박 받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베 신조의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신타로가 '우리집에서 대학은 도쿄대 밖에 없다!'고 말하며 두꺼운 책으로 신조의 머리를 때리는 일도 있을 정도로 좀 심하게 강요했고, 이는 역효과가 나서 오히려 신조는 반항심에 공부를 소홀히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1964년부터 2년간 히라사와 가쓰에이라는 도쿄대학 법학부 학생을 가정교사로 두었는데, 히라사와는 이 당시의 기억을 갖고 인터뷰를 하며 형인 히로노부는 서글서글하고 적을 절대 만들지 않는 타입이었고 신조는 질문을 끝없이 해대며 자기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는 성격이라, 정치가로서 적합한 것은 신조 쪽이었다고 추억하였습니다.  이 인터뷰를 받은 히라사와는 현재 자민당 8선의원으로 있는데, 8선이 되도록 입각을 시켜주지 않았고 스가 총리 밑에서 겨우 첫 입각을 한 걸 두고 아베 신조가 자신의 소년 시절을 유일하게 아는 히라사와를 기피해서 그런 거라며 인터뷰를 한 노가미 다다오키가 분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 아베 신조는 특별히 튀는거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주장하던 안보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급발진 갑자기 말이 많아지면서 달변가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 나온 별명이 '안보 아베'입니다.

참고로 미국 USC 유학 경력에 대한 허위의혹이 존재합니다. 1998년의 아베신조 홈페이지 경력란에는 USC 정치학과에 2년간 유학했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2016년 시점에서는 삭제된 상태였습니다. 2004년 '주간 포스트(週刊ポスト)'의 보도에 의하면 아베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정치학과에 재적한 적이 없고, 이수한 코스 절반이 외국인을 위한 영어코스였으며, 실제로는 유학기간이 1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2015년에 대학 캠퍼스를 방문해서 총장과 이야기한 것이 홈페이지에 보도된 것으로 보아서 동문 취급은 잘 해주는 듯 합니다. 대학교 기사 신타로는 아들의 부족한 스펙을 커버할 목적으로 신조를 외국에 유학을 보냈는데, 신조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자주 국제전화로 고국의 지인과 이야기를 했고, 국제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온 것이 아버지에게 들통나서 강제로 귀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교에선 아베노 무네토(헤이안 시대 선조), 모리 모토나리처럼 양궁을 배웠다고 합니다. 후지TV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양궁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반응형

댓글